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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민속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이야기 — 『귀신들』

by 코코채채 2025. 4. 11.

2025년 4월 9일 개봉한 영화 『귀신들』은 오랜만에 한국형 공포영화가 깊이 있는 서사와 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내며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무서움을 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국 전통 민속신앙이라는 뿌리 깊은 문화적 자산을 매개로 하여 사람과 마을,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과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풀어낸다.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 이를 추적하는 무속인이라는 인물 설정, 그리고 한국적 정서가 뒤엉킨 이야기 전개는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강한 잔상을 남긴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귀신들』을 구성하고 있는 세 가지 핵심 축—공포의 기원과 한국 민속신앙, 무속인의 시선, 그리고 공동체의 균열과 회복—을 중심으로 깊이 있는 리뷰를 전해보고자 한다.

공포와 민속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이야기 — 『귀신들』
공포와 민속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이야기 — 『귀신들』

공포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 민속신앙과 심리적 불안의 경계

 

『귀신들』이 일반적인 공포영화들과 가장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은 그 공포의 근원이 ‘귀신’이라는 존재 자체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왜 귀신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에 집중한다. 전통 민속신앙이란 단순히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는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 지역 공동체의 삶의 방식이고, 외부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기억, 그리고 죄의식에 대한 일종의 해석체계다. 감독은 이 민속신앙을 단지 배경 설정으로 활용하지 않고, 이야기의 중심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영화 속 마을은 한때 번성했지만 지금은 점점 사람들이 떠나고 쇠락해가는 공간이다. 남아 있는 주민들은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사고와 불운에 휘말리고, 사람들은 점점 말을 아끼며, 공동체는 붕괴 직전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 모든 상황이 민속적 ‘귀신 이야기’로 정리되어 간다는 점은 흥미롭다. 귀신은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귀신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듯 행동한다. 누가 먼저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누가 직접 본 것도 없지만, 마을 전체에 귀신이 있다는 전제가 공유되며 공포는 증식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민속 신앙과 인간의 심리적 불안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귀신이란 결국 우리가 잊지 못한 과거의 그림자이며, 책임지지 못한 죄의식의 화신이라는 해석은, 관객들로 하여금 단순한 무서움을 넘어서 ‘왜’ 무서운가에 대한 질문을 품게 만든다. 『귀신들』이 만들어내는 공포는 시각적 충격이나 음향적 자극보다도 훨씬 더 오래 남는 심리적 서늘함을 전제로 한다.

 

무속인의 시선으로 본 세상: 경계인의 존재감과 설득력

 

영화에서 중심 서사는 무속인 ‘소연’의 시점에서 흘러간다. 그녀는 과거에는 대도시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샤먼’이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고향과 비슷한 이 외딴 마을에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상 현상들을 조사하게 되며, 그녀의 능력과 내면은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다. 이 캐릭터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그녀가 단순한 제의 수행자라기보다 ‘증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연은 귀신의 존재를 믿지만,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숭배하지 않는다. 그녀는 귀신을 인간의 감정과 욕망이 만든 결과로 보며, 그것을 외면하거나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귀신의 존재를 ‘들여다보고, 듣고, 말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 귀신은 무섭기보다는 억울하거나, 분노하거나,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가진 존재로 등장한다. 소연은 그 목소리를 대변하는 유일한 창구다.

소연이라는 캐릭터가 성공적인 이유는, 그녀가 ‘경계인’이라는 위치를 충실히 지켜내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과 완전히 섞이지도 않고, 귀신과 완전히 동화되지도 않는다. 현실과 비현실, 이승과 저승, 과학과 신앙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로서의 소연은, 영화의 균형을 잡는 핵심축이 된다. 배우의 절제된 연기와 카리스마는 이 캐릭터의 정체성과 긴장을 훌륭하게 전달하며, 관객에게 큰 설득력을 준다.

이러한 무속인의 시선은 관객에게도 유효하다. 우리는 소연과 함께 사건의 실마리를 좇고, 그녀와 함께 두려움에 맞서며, 마침내 그녀가 도달한 ‘이야기의 진실’을 목격하게 된다. 『귀신들』이 전통적인 무속 캐릭터를 활용하면서도, 전혀 낡거나 과장되지 않게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 공동체의 침묵과 책임의 실체

 

『귀신들』의 마지막 장은, 진짜 공포가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마을에서 벌어진 과거의 사건, 그것이 현재의 기이한 현상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밝혀지며, 우리는 진짜 귀신은 사람들의 침묵과 무책임이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공동체라는 공간은 사실상 한 몸과도 같은 유기체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고통이 외면받고, 누군가의 절규가 묵살될 때, 그것은 결국 공동체 전체의 어둠으로 남게 된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두려움에 떨고, 서로를 의심하고, 외부에서 온 무속인을 경계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그들이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는 암시를 던진다. 그들은 진실을 숨겼고, 침묵했고, 외면했다. 그래서 귀신은 떠날 수 없었고, 사건은 반복됐다. 이 구조는 단순한 호러의 설정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집단의식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장치다.

우리는 자주 귀신 이야기를 타인의 일로 소비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귀신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고. 우리가 외면한 것, 우리가 지우려 했던 것, 우리가 책임지지 않은 것이 바로 귀신이 된다고. 『귀신들』은 그래서 끝내 공포영화가 아니라, 일종의 ‘집단 심리극’으로 진화한다. 그것은 불편하지만, 매우 필요한 서사다.

2025년 한국 영화계에서 『귀신들』은 공포라는 장르의 진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단순한 자극이나 효과에 의존하지 않고, 전통 민속신앙이라는 문화적 토대를 깊이 있게 재해석하며, 그 안에 인간의 감정과 집단의 구조, 그리고 책임이라는 주제를 녹여낸 이 영화는 오랜만에 ‘무서운’ 동시에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귀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지우려 하지 않는 한, 그들은 말없이 곁에 있다. 그리고 그 침묵은 때로는 어떤 비명보다도 무섭다. 『귀신들』은 그 침묵의 무게를, 영화라는 형식으로 우리 곁에 조용히 놓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