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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라이징(2024)-격동의 시대, 전쟁의 미학, 오늘을 비추는 역사

by 코코채채 2025. 4. 7.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 '업라이징'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시대 속 인간 군상의 모습을 깊이 있게 탐색하며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이 각본과 제작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으며,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서사와 미장센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업라이징'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인간 간의 우정과 신분을 초월한 연대, 그리고 생존과 희생의 의미를 정교하게 풀어낸다. 시대극이라는 장르적 틀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시선을 잃지 않는 이 작품은, 역사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서사적 전략을 통해 관객에게 시사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업라이징(2024)-격동의 시대, 전쟁의 미학, 오늘을 비추는 역사
업라이징(2024)-격동의 시대, 전쟁의 미학, 오늘을 비추는 역사

격동의 시대, 신분과 인간성 사이의 균열

 

'업라이징'은 1592년, 조선에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라 전체가 전란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사회적 위계와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이 시기에, 영화는 양반 출신의 선비 '이도'와 천민 출신의 무사 '백돌'의 만남과 우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양반과 천민의 관계는 철저히 상하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은 이 고정된 질서를 무너뜨린다. '이도'는 문으로 세상을 읽고자 했으나, 무력한 현실 앞에서 몸으로 싸우는 법을 배워야 했고, '백돌'은 늘 수동적인 존재였으나 이도와의 인연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정의하게 된다.

두 인물은 사회적으로는 너무도 다른 위치에 있으나, 전쟁 속에서는 같은 생존자이자 고통받는 인간이다. 이들의 우정은 단순한 동지애를 넘어서, 신분제의 균열과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감독은 두 인물의 대조적인 삶을 통해 조선 사회의 불합리를 드러내고, 동시에 그 안에서 피어나는 연대의 가치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업라이징'은 이처럼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며, 사회구조 속에서 사라진 존재들의 목소리를 되살린다.

 

전쟁의 미학, 파괴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

 

박찬욱 감독의 작품답게 '업라이징'은 그 어떤 장면도 의미 없이 지나가지 않는다. 전쟁의 참혹함을 그리는 데 있어 감독은 선정적이거나 감정적인 과잉을 철저히 배제한다. 오히려 냉철하고 절제된 연출로 전쟁의 공포를 시각화하며,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 감정의 디테일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대규모 전투 장면보다도 참호 속 병사들의 공포, 폐허가 된 마을에서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조용히 죽음을 준비하는 이들의 침묵 등,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들이 곳곳에 배치된다.

촬영은 대체로 어두운 톤과 자연광 위주의 조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불확실성과 혼돈, 그리고 죽음이 일상이 된 세계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슬로 모션과 클로즈업의 절제된 활용은 전투 장면에서의 감정 밀도를 한층 더 끌어올리며, 전쟁의 스펙터클이 아닌 인간의 절박한 생존 본능에 집중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선택과 희생의 장면은 전쟁이 인간에게 무엇을 남기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전투는 끝나도, 상흔은 남는다는 사실이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로 이어진다.

음악과 음향의 활용도 인상적이다. 전통 악기와 현대적 사운드 디자인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고전적인 미장센 속에서도 현대적인 긴장감을 형성한다. 음악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침묵과 여백을 통해 관객이 장면 속 감정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끈다. '업라이징'은 그렇게 시청각적 요소를 통해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며, 전쟁이라는 비극적 배경 위에 감성의 결을 섬세하게 얹는다.

 

오늘을 비추는 역사, 현대적 우화로서의 의미

 

비록 16세기 말이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업라이징'이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 이는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단순한 사극이 아닌, 현대적 우화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신분, 권력, 계급, 부조리 등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며, 이로 인해 개인은 소외되고, 목소리는 묻힌다. '이도'와 '백돌'의 우정은 단순한 역사적 상상력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갈등과 연대의 서사를 투영한다.

특히, 영화는 공동체의 붕괴와 재편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둔다. 전쟁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다시 공동체를 만들고, 새로운 관계를 통해 회복을 모색한다. 이는 오늘날의 팬데믹, 기후 위기, 전쟁 등 글로벌한 위기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연대하고 극복할 수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박찬욱 감독은 시대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병리적 현상들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업라이징'을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영화가 아닌, 미래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만들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이 같은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주연 배우들은 캐릭터의 감정선을 과장 없이, 그러나 강한 밀도로 표현한다. 특히 이도 역을 맡은 배우는 학식과 양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복합적인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백돌 역의 배우는 신체의 리듬과 감정의 동선을 통해 묵직한 존재감을 선사한다.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은 영화의 핵심 정서를 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업라이징'은 과거를 빌려 오늘을 말하는 영화이다. 비극적인 시대 속에서도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며,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에도 우정, 사랑, 책임 같은 보편적인 감정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업라이징'은 그렇게, 전쟁이라는 절망 속에서 피어난 인간성의 기록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