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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풍자와 현실의 경계: 하정우의 세 번째 연출작 『로비』

by 코코채채 2025. 4. 8.

2025년 4월 2일, 배우이자 감독 하정우가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신작 코미디 영화 『로비』가 관객을 찾았다. 전작 『롤러코스터』와 『허삼관』을 통해 감독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하정우는 이번 작품에서 한층 더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하며, ‘로비’라는 낯설지 않은 사회적 소재를 코미디 장르에 녹여냈다. 『로비』는 기술 기반의 중소기업 CEO 창욱이 4조 원 규모의 국가 충전소 사업을 따내기 위해 본격적인 ‘로비 골프’에 뛰어드는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신랄하게 그린다. 하정우는 연출뿐 아니라 주연까지 맡으며, 자신만의 연기 색깔과 연출 스타일을 동시에 펼쳐 보였다.

이번 글에서는 『로비』의 주제와 연출적 특징, 그리고 영화의 사회적 맥락과 관객 반응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와 의미를 세 가지 소주제로 깊이 있게 살펴본다.

유쾌한 풍자와 현실의 경계: 하정우의 세 번째 연출작 『로비』
유쾌한 풍자와 현실의 경계: 하정우의 세 번째 연출작 『로비』

“로비도 경쟁력이다”: 신자본주의 사회의 풍자적 묘사


『로비』의 가장 큰 매력은 제목 그대로 ‘로비’라는 단어가 지닌 무게와 풍자적 상징성이다. 전통적으로 로비란 정치권과 기업 사이의 보이지 않는 거래 혹은 유착을 의미하며,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그러나 하정우는 이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코미디 장르의 장점을 활용해 위트를 곁들여 관객이 부담 없이 사회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 속 주인공 창욱은 순수한 기술력으로만 승부하던 스타트업 CEO다. 하지만 대형 국책 프로젝트를 앞두고 그는 전혀 다른 세계와 맞닥뜨린다. 그것은 기술이 아닌 ‘관계’와 ‘줄’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창욱이 처음으로 골프장에 들어서는 장면은 영화의 전환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퀀스로, 기존의 세계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생존 방식이 주입되는 순간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하정우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로비’의 세계가 단순히 부정한 공간이 아니라, 이제는 생존의 조건이 되어버린 현실의 연장선임을 보여준다. 작품은 한국 사회의 시스템이 과연 얼마나 공정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를 아주 영리하고도 유쾌하게 풀어간다.

연출과 연기의 교차점: 하정우의 두 얼굴


『로비』는 하정우라는 이름이 지닌 이중적인 힘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다. 배우로서의 그의 카리스마와 유머 감각은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입증되었지만, 연출자로서의 하정우는 아직 실험을 거듭하는 단계에 있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에서는 그의 연출 스타일이 훨씬 성숙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배우들과의 밀도 높은 대본 리딩을 통해 캐릭터의 톤을 조율하고, 장면마다 의도된 타이밍과 리듬을 부여했다. 특히 골프장 시퀀스는 단순한 외부 촬영 장면이 아니라, 인물 간의 긴장과 심리를 엮어내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카메라 무빙이나 컷 분할을 통한 유려한 장면 전개는 코미디의 타이밍을 살리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또한 하정우는 자신의 캐릭터 창욱을 너무 과장하거나 희화화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쉽게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창욱은 로비의 세계에 진입하면서 점점 변해가지만, 그 변화는 어느 한쪽의 옳고 그름을 나누기보다는, 현실에 적응해가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지점에서 하정우는 배우로서의 진정성과 감독으로서의 통찰력을 동시에 드러낸다.

 

관객과 평단의 온도차: 웃음과 메시지 사이에서


영화 『로비』는 개봉 직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특히 중장년층 관객들에게는 ‘골프’라는 소재가 친숙하게 다가갔고, 하정우 특유의 유머 감각은 젊은 관객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SNS 상에는 “이상하게 재밌는 영화”, “현실 풍자 개쎈 블랙코미디”라는 리뷰들이 이어지며, 대중적인 흥행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은 전작과의 비교 속에서 다소 복잡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롤러코스터』가 전형적인 B급 감성과 비주류 유머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로비』는 보다 주류적이고 포괄적인 유머를 시도한다. 그만큼 날카로운 풍자의 칼날이 무뎌졌다는 평도 있지만, 반대로 대중과의 접점을 확장하는 데에는 성공했다는 분석도 있다.

흥행 측면에서 『로비』는 개봉 첫 주말 50만 명 이상을 동원했지만, 박정민 주연의 『승부』와 같은 경쟁작에 밀려 박스오피스 순위가 하락하기도 했다. 다만, 관객들은 로비라는 소재의 참신함과 하정우의 연출에 일정 부분 신선함을 느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평범한 인물이 비정상적인 시스템 속에서 적응해 나가는 서사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현실을 웃으며 들여다보는 용기


『로비』는 코미디 영화이지만 단순히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현실을 조명한다. 기술만으로는 부족한 세상, 관계와 줄서기가 경쟁력이 되는 사회 속에서 한 인물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하정우는 이러한 메시지를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게 풀어내며 균형을 잡는다.

물론 『로비』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유머의 결이 일부 관객에게는 낯설 수 있으며, 구조적으로는 다소 반복되는 전개가 지루함을 유발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진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에 대한 솔직한 풍자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마주하는 뼈 있는 웃음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코미디로 풀어낸 사회 풍자극 『로비』. 하정우라는 이름이 지닌 무게만큼이나, 이 영화는 웃음 뒤에 남는 묵직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건넨다. 이 봄, 조금은 다르게 사회를 바라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로비』를 추천한다. 적어도 이 영화는, 우리에게 웃을 용기와 생각할 질문을 동시에 던져줄 것이다.